스팀 방치형 게임 3종 리뷰&후기

요즘은 게임도 피곤하면 손이 잘 안 간다. 퇴근하고 키보드 앞에 앉는 것조차 귀찮은 날에는, 그저 켜두기만 해도 되는 '방치형 게임'이 최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방치형 게임들은 예전만큼 방치가 되지 않는다. 자동 전투는 기본인데, 어느 순간 장비를 바꾸고, 스킬을 조정하고, 환생 타이밍까지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세 작품도 그런 게임들이다. 스팀에서 판매 중인 인크리멘탈 에픽 히어로 2 (Incremental Epic Hero 2), 노마드 아이들 (Nomad Idle), 방치형 던전 (Raid Autus). 전부 다 자동으로 돌아가지만,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결국 꽤 긴 시간 붙잡게 되는 게임들이다.

인크리멘탈 에픽 히어로2 (Incremental Epic Hero 2)

단순한 도트 그래픽에 자동 전투. 얼핏 보면 흔한 방치형 게임처럼 보이지만, 몇 분만 해보면 알게 된다. 이 게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IEH2는 액션 RPG의 전략성과 방치형의 편의성을 절묘하게 섞은 게임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꾸준히 해금되고, 장비와 스킬을 얼마나 잘 세팅하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단순히 '켜두는 것'만으로는 캐릭터가 강해지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빌드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스킬 조합을 만들어야만 쾌적하게 성장할 수 있다.

핵심 시스템은 '승천'.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캐릭터를 초기화하고 대신 강력한 능력치를 얻게 된다. 매번 초기화는 번거롭지만, 그만큼 루프를 반복할수록 더 빨라지고 강해진다. 즉, 방치형인데도 계속해서 "언제 승천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임이다. 손은 덜 가지만, 머리는 자꾸 써야 한다.

이 게임은 방치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적인 플레이를 원하는 유저에게 꽤 잘 맞는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깊이 있는 성장 루프를 즐기고 싶다면 충분히 찍먹할 만하다.

노마드 아이들 (Nomad Idle)

노마드 아이들(Nomad Idle)은 ‘노마드 서바이벌’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액션 요소 없이 성장 루트를 정해두면 자동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방치형 RPG다. 겉보기에 단순한 구조지만, 막상 손을 대기 시작하면 꽤나 할 게 많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이벤트 시스템'. 단순히 캐릭터를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목표를 달성해 장비, 캐릭터, 소환수 등을 해금하게 된다. 덕분에 성장 방향이 자연스럽게 유도되며,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틈 없이 콘텐츠가 이어진다.

게임에는 총 7종의 캐릭터가 있고, 각각 성장 방식이 다르다. 필자의 경우엔 ‘쥐 인간 궁수’를 가장 많이 썼는데, 체력은 약하지만 DPS가 높아서 파밍 효율이 좋았다. 장비 강화에 필요한 재료가 후반부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럴 때 빠른 맵 순회가 가능한 캐릭터가 유리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전체적인 콘텐츠 볼륨은 아직 부족한 편이고, 엔드 콘텐츠는 반복적인 루프가 중심이라 금방 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빌드 조합과 이벤트 중심의 시스템 덕분에 단순한 방치형보다는 한 단계 더 유도된 재미를 준다.

스핀오프답게 스케일은 작지만, 시스템은 꽤 짜임새 있다. 노마드 서바이벌을 재밌게 즐겼다면, 이 게임도 충분히 끌릴 것이다.

방치형 던전 (Raid Autus)

방치형 던전(Raid Autus)의 첫인상은 낡았다. MS-DOS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투박한 그래픽. 하지만 이 투박함이 은근히 매력 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MMO 스타일의 파티 시스템을 방치형 구조로 바꿔 놓은 작품이다. 플레이어를 포함해 총 20개의 직업이 있고, 이들을 조합해 파티를 꾸리고 레이드를 클리어하는 방식이다. 모든 전투는 자동이지만, 그 안에는 '환생 시스템'이라는 성장 루프가 숨어 있다.

이 게임의 환생은 ‘지식 전승’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한다. 일정 포인트를 초과하면 대부분의 능력을 유지한 채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일반적인 리셋이 아니라 ‘버프된 상태로 다시 달리기’에 가깝다. 그만큼 성장 속도도 빨라지고, 스노우볼이 빠르게 굴러간다.

직업은 많지만, 개성은 조금 아쉽다. 모든 직업이 결국 파티원 슬롯을 채우는 역할이라 전략적인 조합을 고민할 여지는 적다. 스킬도 자동으로 찍히고, 직업 해금만 빠르게 반복되다 보면 캐릭터보다는 장비 슬롯처럼 느껴진다. 수집 요소로는 괜찮지만, RPG적인 깊이는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방치형 던전은 짧은 시간 안에 성장 쾌감을 맛보고 싶은 유저에게 적합하다. 전략적 깊이나 세밀한 컨트롤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레트로 감성과 빠른 템포를 즐기고 싶다면 의외로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플레이를 마치며

세 게임 모두 ‘방치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IEH2 는 전략과 반복 루프의 정교함을 갖춘 고인물형 방치형이고. 노마드 아이들은 가볍지만 손이 자꾸 가는, 이벤트 중심의 콘텐츠형 방치형. 방치형 던전은 올드 감성과 빠른 성장 루프가 돋보이는, 라이트한 방치형 게임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게임이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방치형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방향성과 개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필자처럼 게임할 시간은 줄었지만 무언가는 키우고 싶은 유저라면, 이 세 작품 중 하나쯤은 분명 잘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