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티컬 리퍼 번들 8 라인업에 포함돼 있던 ‘섀도우: 어웨이크닝(Shadows: Awakening)’을 마무리했다. 쿼터뷰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나 애매한 경험이었다.
플레이 방식은 파티 멤버를 실시간으로 교체하며 전투를 진행하는 ‘태그 액션’ 시스템인데, 지금 와서는 특별할 것 없는 방식이다. 캐릭터 조합, 스킬 연계, 전투 중 태그 타이밍까지 신경 써야 해서 나름의 전략성은 있으나, 이미 익숙한 구조다.
장르의 정체성은 어드벤처에 더 가깝다
이 게임은 스팀 상에선 핵 앤 슬래시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어드벤처 RPG 쪽에 더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핵 앤 슬래시’는 시원한 손맛으로 다수의 적을 쓸어버리는 것이 핵심이고, 스토리 비중은 낮은 편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디아블로 시리즈가 그렇다. 그러나 섀도우: 어웨이크닝은 스토리 비중이 상당히 크고, 전투 자체도 그렇게 통쾌하진 않다.
스킬 이펙트는 정제되어 있지만 너무 밋밋하고, 다양한 스킬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실제 전투에서는 3개만 퀵슬롯에 올릴 수 있어서 단조롭게 느껴진다. 게다가 캐릭터 스킬 레벨도 최대 3까지밖에 안 되는 점이 뭔가 아쉬움을 남긴다. 이쯤 되니 3이라는 숫자에 무슨 저주라도 걸린 느낌이다.
장비 파밍의 허무함
장비 시스템은 전형적인 RPG 구조인데, 문제는 파밍의 재미가 덜하다는 점이다. 고급 장비는 대부분 던전 깊숙한 곳이나, 서브퀘스트 보상, 또는 상점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상점이 또 드물게 좋은 장비를 팔고, 가격은 겁나게 비싸다. 결국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맵을 전부 돌아야 하는데, 이걸 감당하려면 인내심이 좀 필요하다.
이동이 너무 느리다
가장 큰 단점은 이동 속도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느리다. 심지어 빠른 편인 말벌 캐릭터조차 “그나마” 빠른 수준이다. 던전과 마을 모두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인데, 포탈은 드문드문 존재하고, 던전 안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퍼즐을 풀고 깊숙이 들어갔다가 허탕 치고 돌아 나오는 상황도 허다하다.
이런 이동 불편에 함정과 퍼즐까지 얹어지면 고통은 배가된다. 퍼즐 자체도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힌트 부족 + 기믹 이해 실패 = 공략 사이트 급습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디테일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트래쉬 게임이라 하기엔 아깝다. 그래픽은 정말 훌륭하고, 배경과 분위기 연출도 뛰어나다. 게임 세계의 구성과 디테일은 꽤나 정성을 들인 티가 난다.
또한 NPC와의 대화에 따라 스토리 전개나 동료의 조합이 달라지는 등, 분기 요소도 나름 존재한다. 특정 캐릭터는 한 회차에서 만나지 못하면 영영 볼 수 없기도 해서, 다회차 플레이를 염두에 둔 설계라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게임 자체가 그 다회차를 돌고 싶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가 구매는 절대 금지
이 게임은 스팀에서 정가가 무려 43,000원인데, 그 값어치를 한다고 보긴 어렵다. 번들로 자주 풀리고, 할인도 자주 들어가니 반드시 세일 때 노려야 한다. 참고로 스팀에는 한글화 미지원으로 되어 있지만, 설정을 조금만 만지면 100% 한글로 플레이할 수 있다.
마치며
정리하자면, 섀도우: 어웨이크닝은 스타일은 멋있지만 손맛은 부족하고, 퍼즐은 정성스러우나 피로감도 큰 게임이다. ‘핵 앤 슬래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고, 반대로 디아블로 같은 게임보다 느긋한 템포로 RPG를 즐기고 싶은 유저라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